Комментарии: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의 후예들. 신뢰가 가지않는다.
Ответить우리나라 역사책에서는 나오지 않는, 단순히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하고만 교류를 하지 않고 사마르칸트에서도 교류를 하며 다양한 연합을 일궈내려는 노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도 그런 노력이 끝나지 않아야 함을 느낍니다.
오랜 연합의 역사를 통해 해당 지역의 국가들과 교류하여 좋은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257979@네이버
이번에도 잘 배우고 갑니다!!
sclscl0305@네이버.컴
주변국들이 강성하기에 생존하기 위해선 몸부림을 쳐야했던 건 고대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래도 그게 한반도, 대한민국이 발전했었던 동력이기도 했겠지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고대 한반도는 국제적이었네요. 고대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새롭고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email protected])
대륙과 해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에 있었던 고대 한국이었기에 타국과의 교류가 왕성했을 거라 생각해왔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더 컸군요. 이런 거 보면 확실히 고려시대까지는 우리나라가 글로벌하게 놀았던 거 같아요. 조선시대 오면서 폐쇄적으로 변한 거 같고요. 글로벌 고대사 더 많이 알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네요. / superultimate46@지메일
Ответить고구려가 우즈베키스탄 땅에 있었던 소그드족과 외교를 했다는 사실 너무 신선하네요. 경주 무덤에서 나온 흙인형만 봐도 이국인이라는 게 드러나네요. 한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원래부터 크게 의미부여하지 않았지만 강의를 듣고나니 더더욱 한반도 기반 국가들은 단일민족이 아닌 다종족 국가였다라는 생각이 팍팍 드네요. ([email protected])
Ответить군사적 경제적으로 우리는 카자흐스탄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중국 국경과 넓게 접해있고 넓은땅과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과 둘도 없는 형제국가로 지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몽고와 인도 버마와도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이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중국을 견제할수 있어요
참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우리강단사학도 노력 많이 하신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눈물겨운 그노력에 감사드리면서 정말 고조선이 어떤 역사였고 어디에 있었는지, 얼마나 번성했는지, 천부경은 정말 수천년 딘군조선의 통치이념이었는지 등등..제대로 알게되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생각합니다.
음? 내가 듣던 친일파 강단사학이 아니네요?!
Ответить강단사학이면 구독취소다.
Ответить한단고기 기록엔 흉노의 시조 기록이 나오던데~ 흉노시원을 기록한 세계 어느 역사에도 없지만, 한단고기엔 있더만~ 지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Ответить역사를 국내에 한정짖는 바보 사학자도 있나보내
고대에 주변국들과 얼마나 많은 교류가 있는대
단군 역사도 신화로 치부하는 사학자들이 그럴만도
하겟지만 그릇이 작아 ㅎㅎㅎ
고구려, 백제, 신라는 처음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삼국시대 중국의 주인은 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아무리 중국이 자기 것이라고 한 들,
역사적 사실이 변합니까?
고대 중국은 북방 민족의 전쟁터엿지.
거기에 중국 한족이 낄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고구려, 백제, 신라, 당 모두 북방 민족 아닙니까?
당은 중국의 역사가 아닙니다.
교수님.
아프라샵 벽화는 국사교과서에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왜 고조선, 부여, 옥저, 동예, 등 우리가 과거에 배웠던 우리 고대사는 점점 더 국사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없는거죠?
우리 스스로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지 않습니까?
단기 4,354년이 되는 우리의 역사가, 일본의 역사왜곡에 의해 1,000~1500년의 역사로 축소조작되었고,
그러니 중국이 우리 고대사를 거저먹기 시작해, 지금은 우리 고대사는 우리역사에서 조차 사라지고 없는 현실.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까요?
친일부역매국강단사학자들이 지금도 우리 뿌리역사를 부정하는 일제가 왜곡한 식민사학교육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통탄할 일입니다.
국내에서 하라는 얘기를 하는 자들 뻔하네요. 매국노들이 확실합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자들. 우리역사를 왜곡해서 일본에 충성하고 밥벌이 해온자들.
정말 치가 떨리도록 증오스런 자들입니다.
교수님
663년 백강전투 질문드립니다.
백제 패망한 나라에 왜에서 대체 왜 그 많은 병선과 병사를 보냈을까요? 이해가 안갑니다.
현대에서도 초강대국과 고작 임시정부나 저항군에 불과한 세력과의 전쟁 발생시 어디를 지원할까요!. 게다가 불보듯 뻔한 패배에 사력을 다해 지원한 이유.. 너무 이상합니다
역사학자에 놀아 놀지 말고 각자각자 진실의 역사를 찿아 공부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찿읍시다 이들은 최근에 정체성을 파괴시킨 전력이 들어나자 갑자기 비열하게 태세전환을 시도하는 배부른 돼지들 입니다 이미 늦어버렸음
Ответить이렇게 좋은 강의가 조회수가 너무 적어 아쉽군요. 국뽕적인 내용이 없어 그런듯.
Ответить1. 위만조선의 왕궁을 못 찾는 이유
현재의 요동에 비정해 놓고 찾기 때문에 못
찾는 것 입니다.
하남성 또는 산동성지역에서 찾으면 나올
듯 함다.
우리사학계의 문제점은 현 요하문명이 고조
선과 연결되고 있음에도 애써 이를 부정하
고자 하고 있습니다(송호정 교수),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그리고 명도전(연나라 화폐
가 아니고 고조선 화폐임) 등의 분포지역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으며 아울러 최근
최근 농업적 측면에서 분석한 조와 쌀의 이
동 경로, 언어의 이동 경로와 그 유사점이
요하문명과 가장 가깝게 나타나는 유전적
특징이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 난다는
학술적 근거가 존재함에도 아직도 대학강
단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고대 조선과 국경을 마주한 중국 연나
라의 영토는 실제로 매우 작았슴에도, 연나
라 수도인 계성을 현재의 북경으로 비정하
는 등 여지껏 확대해석하여 왔으나, 중국북
경대학의 고고학 검증에서 현재의 북경에
서는 연나라의 유물이 나오지 않음을 확인
하였고 유명한 북경대학교 역사학 교수도
연나라의 강역이 북경까지 미쳤다는 내용은
고증할 수 없다고 밝혔는 바, 사실 연나라의
강역은 산서성 남단과 하남성 북단으로 비정
하는 것이 옳습니다.
결론적으로 위만조선의 왕궁터는 하북성
호타하 이하 지역에서 하남성지역에서 찾
아야 할 듯 합니다.
2. 기자조선의 왕궁터를 못 찾는 이유
은나라의 백성을 위무하기 위한 정치적 판
단으로 명예직으로 책봉한 것 일 뿐이기 때
문 입니다.
은나라의 지배계급은 동이족들로서 기자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 뿐 입니다.
그리고 기자의 "기"는 오늘날의 성씨가 아닙
니다. 해서,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이 기
자와 같이 "기"자를 썻다고 하여 기자의 후손
인 듯 착각하고 있는 것 입니다.
다만, 고대시기 성이 고착화 일반화되지 않
았지만, 모계사회의 영향으로 "씨"를 사용한
것이 사마천의 사기 등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기자와 기준은 동일한 동이족이었음은
인정됩니다.
특히 기자가 조선후로 책봉되었고 동쪽으로
갔다고 하였으나, 노회한 몸뚱아리를 일으켜
주나라 무왕의 조회에 참석하였다 한 것으로
보아, 기자는 멀리 거주한 것이 아니고 주왕
궁과 지척에 소재하였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현재 기자의 묘가 소재하는 곳도 이를 증명
합니다.
KOREA韓国古代史廳設立渴望。😢古代史=韓國未來史=不透明韓國=犯罪都市4=4千万❗한국은 없다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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